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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고등학교장 함병권

정광고등학교장 함병권

만암스님은 불교의 근대 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자 11살에 스님은 백양사 취운 도진(翠雲 道珍)선사의 문하에서 출가했다.

스님은 항상 선과 교를 함께 수행하였다.
"승려는 행(行)이 기본이 된다"면서"자기 공부가 먼저 이루어진 뒤에야 다른 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중이 되기 전에 부처를 말하지 말라"며 머리를 깎았다고 다 승려가 아니요,
먹물 옷을 입었다고 모두 중일 수 없다는 분명한 승가상을 제시했다.

하루하루의 일과가 철저한 수행이었던 스님은 매일 새벽 3시 아침 도량석과 함께
냉수욕으로 시작해 예불이 끝나면 후학들의 아침 인사를 받으면서 한 사람씩 공부를 지도했다.

그후 선방에 들어가 입선(入禪)하고 공양도 대중과 더불어 했다.
특히 스님은 화두로 `이 뭣고`를 권해 후학들로부터 `이 뭣고 스님`이라고 불렸다.
만암스님의 제자인 서옹(西翁)스님은 "스님은 매우 자상하셨지만 공부에 있어서 만큼은 엄격하셨다"고 회고했다.

1916년 백양사의 주지가 된 만암스님은 교육사업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백양사 바로 옆의 청류암에 `광성의숙(廣成義塾)`을 설립했는데, 이곳에서는 전통 강원 교육을 한 것이 아니라
교학, 선, 율과 함께 국어, 국사, 수리학 등 현대 학문도 가르쳤다.

이같은 교육사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1925년 서울에 올라온 만암스님은 박한영(朴漢永)스님과 함께
재단법인 조선불교 선교양종 중앙교무원을 세우고, 전국 사찰로부터 출자를 받아 1928년 불교전수학교를 개교하여 초대 교장에 취임했다.
바로 이 학교가 중앙불교전문학교를 거쳐 현재의 동국대학교가 된다.
또한 해방 이후 1946년에는 정광중·고등학교를 설립하고, 1954년에는 조계종 종정에 취임하게 된다.

만암스님은 1956년 12월, 문도들을 큰 방에 불러 모아 "이제 사흘 후 옷을 벗어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래의 게송을 읊고 열반에 들었다.

백암산 위 한 사나운 범이
한밤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다물어 죽인다.
서늘하고 맑은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 울부짖으니
가을 하늘에 밝은 달빛은 서릿발처럼 차가웁다.


"마지막 입는 옷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말과 함께 가지고 있던 모든 물품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준 만암스님은 사흘 뒤 자는 듯 눈을 감았다. 다비식에서 영롱한 사리 8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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